길 없는 길을 가다
길 없는 길을 가다
아래 글은 2009년 9월 16일자 제천교차로에 실린 '아름다운 사회칼럼' 이다.
원문은 이곳에 있다. 이전에 올라온 글들도 읽어보기 바란다.
청명한 가을날이다. 그저 산색만 즐기고 가도 좋으련만 ‘좋은 말씀’을 듣고 싶다고 몇몇 사람들이 법문을 청한다. 사찰의 유래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경허스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100여 년 전, 이 절에서 살았던 스님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상에서 자유로웠던 분이다. 하지만 이 자유인 경허(鏡虛)스님도 이 곳 내포지역을 ‘호서(湖西)’라고 부르면서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래서 경허스님의 글 말미에는 ‘호서로 돌아가는 승려’라는 표현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대자유인이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이곳에서 강산이 변해가는 시간을 살고 있다. 경허스님이 직접 쓴 현판을 단 건물에서 살며, 100여 년 전 그때 그 분이 살았던 흔적들을 그대도 더듬고 밟아가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최인호는 ‘길 없는 길’을 쓰면서 경허스님께 푹 빠졌던 모양이다. 그는 불교가 아닌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교의 다름을 떠나 ‘인간 경허’에 한없이 매료된 것이리라.
자신의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나는 줄곧 경허의 행적을 좇으면서 지내왔다… 나는 단 한순간도 경허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경허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경허의 눈을 빌려 사물을 보고, 경허의 손을 빌려 사물을 만지고, 경허의 마음을 빌려 생각하고, 경허의 잠을 빌려 꿈을 꾸었다. 경허가 웃으면 나도 웃었으며 경허가 울면 나도 울었다. 경허가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냈으며, 경허가 술을 마시면 나도 술을 마셨다. 경허가 길을 떠나면 나 또한 길을 떠났다. 나는 경허의 그림자였으며 경허 또한 나의 그림자였다.’
세련되고 매끈한 작가의 글이 아니라 감출 수 없는 속내를 너무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경허스님의 그림자 인가 했더니 어느새 경허스님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인간 최인호’가 부러웠다. 경허스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수 십 년씩 수행에 매진하는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가 되기가 그렇게 어려운데, 인간 최인호는 하나가 된 것이다. 수행자의 세계와 작가의 세계에 차이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면이든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인호가 그저 글을 쓰기 위해서만 이었다면 결코 경허와 하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경허선사는 길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시대와 현실, 그런 자리에서 스스로 당신의 길을 만들어 갔다. 그 길이 선(禪)의 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선(禪)’이라는 말을 듣고, 또 선의 정신세계를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은혜는 오로지 경허선사의 덕이다. 21세기는 정신의 시대이고 선(禪)은 인류가 가진 정신문화의 가장 빛나는 유산이며 미래이다. 선(禪)의 시각에서 보자면 경허선사만 길 없는 길을 간 것이 아니다. 작가 최인호도 길 없는 길을 걸었고,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들이 있고, 이미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늘 새로운 날이고, 누구나 매 순간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맴도는 수많은 단어들중 무엇을 대자연의 숨결을 통해 입으로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안할것인지 제대로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이를테면 그 것 또한 길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 길은 선이라고 할수도 있고 한문 그대로 도라고 할수도 있다. 이 길은 사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무한한 우주에서 티클보다 작은 인간이 몇마디 말로써 이것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화자의 단어 골라냄에 따라 횡설수설이 될수도 있는 반면 선이나 도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글을 보면서 당신의 마음이 불퀘감을 느낀다면 이 글은 단지 횡설수설일 뿐이고, 반대로 미소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이미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 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